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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03 Archives

April 3, 2003

개불알풀

제주도 산굼부리 가는 길에는 삼나무숲이 좋습니다. 연병장에 나온 병정들처럼 든든해 보입니다. 그 삼나무 숲속에 좁쌀같은 개불알풀이 꽃을 피웠습니다. 개불알풀은 이른 봄에 피는 연자줏빛 풀꽃입니다. 사람들은 장대같은 삼나무숲만 쳐다볼 뿐 그 발 아래 좁쌀같은 개불알풀은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아니, 워낙 작아서 눈에 띄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삼나무도 개불알풀도 스스로가 지존무상입니다. 덩지 좋다고 으스대지 않고, 덩지 작다고 기 죽지 않습니다. 아무리 커도 으스댈 것 없고, 아무리 작아도 비굴해질 것이 없음을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유리하면 교만하고, 불리하면 비굴해지기 쉬운 것은 인생살이뿐입니다.「김재일」

멋진 사람 아닙니까? 어떻게 그 아름다운 꽃에 이런 이름을 붙일 생각을 했는지...
누군지는 모르나 멋지게 인생을 산 사람일 겁니다.

April 4, 2003

고자질

저녁을 먹기 위해 식탁에 앉자마자 수민이가 말을 꺼낸다.

"아빠, 오빠 축구공 잃어 버렸대요"

형준이가 세배돈 다 털어 산 피보노바 축구공을 몇 번 차보지도 못하고 잃어 버린 것이다.
형준이는 혼이 날 줄 알았는지 쫄아서 아빠 눈치 한번 쓱 보고 얼굴을 들지 못한다.

"조형준, 이제 축구 다 했네"
여러 일로 정신상태가 피곤한 내입에서 나온 한마디였다. 차갑다.

'괜찮아 형준아 잃어 버릴 수도 있지, 너무 걱정하지마.. 아빠가 또 사줄께' 라고 다정하게 위로를 해주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차갑게 한마디로 상황을 종결시킨 내자신이 바보같다.

정작 혼이 난 것은 여우 수민이다.
엄마가 아빠한테 고자질 했다고 수민이를 혼내 주었다.

"조수민, 오빠가 가장 소중하게 아끼는 것을 잃어버려 속상하고 있는데 아빠한테 일러 바치고 있어. 넌 오빠가 그러면 화내고 싫어하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니. 오빠가 지금 얼마나 가슴이 아픈데... 이넘의 못된 가시나야"

그렇구나! 부부란.... 부족한 생각주머니를 서로서로 채워 주며 사는 사람들....

미안하다, 형준아... 오늘 아빠가 맛있는 것 사줄께.

April 7, 2003

거짓말 같은 이야기

형준이가 들려준 거짓말 같은 실화 이야기입니다.
반에서 시험을 보았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 만화영화 제목을 한가지씩 쓰는 것이었는데.

선생님이 ‘아기공룡둘리’를 적은 사람은 오답 처리를 하였답니다.
애들이 '아기공룡둘리'는 우리나라 만화영화라고 선생님에게 강력 항의하자,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마이콜이 나오는데 그게 외국 만화지, 어디 우리나라 만화니?”

April 9, 2003

인사동

주말 주중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 오는 서울의 명소중의 하나를 ‘도대체 이 곳에 뭐 볼 것이 있다고 날마다 이 난리냐?’ 라는 생각으로13년째 매일 지나치고 있다.
나에게 인사동은 몇몇 화랑, 싸구려 악세서리들과 도자기들... 뭐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없는 볼 품 없는 거리이다.

그런 생각으로 오늘 아침도 그 골목길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매일 보아서 나에겐 별 관심 없는 것들이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은 어떨까?’
‘내가 처음 이 길을 거닐 때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항상 그 자리에 있어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들을 가끔은 새로운 눈으로 보아야겠다. 그것이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움들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혹시 나도 모르게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이 있지는 않나... 관심을 가져봐야겠다.

사물들...자연들...그리고 사람들을...

April 14, 2003

숙제

형준이 학교 과제물중 지역사회 문화유적지에 대해 알아 오는 것이 있나 봅니다. 그래서 토요일 오후 인근 강화도로 문화기행을 갔다 왔습니다.

첫 여정은 가장 잘 알려진 마니산으로 잡고 온 가족이 등반을 하였습니다. 죽는 줄 알았습니다. ㅡㅡ;
평소 집에서만 뒹글던 소소부부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 잡고 3시간의 산행을 마쳤고, 숙제때문에 온가족을 고행의 길로 몰아 넣은 형준이는 힘들어도 본인때문에 온가족이 고생한다는 죄책감 때문인지(ㅡㅡ;) 포기하지 않고 등반을 하였습니다. 수민이만 기운좋게 힘들다는 소리 안하고 끝까지 올라갔습니다.

마니산을 보고 초지진이라는 곳에 가서 대포 구경하고 광성보에 가서 바다보고 하루 여정을 마쳤습니다. 돌아 오는 차안에서 엄마가 "4년후에 수민이 숙제때문에 이곳을 다시 한번 와야겠구나" 라고 말하자 수민이는 좋아했고 형준이는 오늘 고생한 것이 와 닿았는지 자기는 다 봤으니깐 안따라 나서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속마음을 아는 아빠가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했습니다. "그럼, 형준이는 빠지고 아빠엄마하고 수민이랑만 맛있는 것 사먹어야지". 돼지 조형준이 이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아빠는 알고 있었습니다. "에이 그런게 어디있어, 나도 또 올꺼야"

이어지는 형준이 한마디가 이날 피로를 잊게 만들었습니다.

"아빠, 근데 뭐 먹을꺼야?"

*4년후에 먹을 것에 벌써 관심을 보이는 조형준 돼지야~ 아프지 말고 튼튼하게 커라.

April 21, 2003

주말저녁 부녀가 사이좋게 앉아 TV를 보는데 수민이가 뚱딴지 같은 질문을 한다.

“아빠, 아빠는 용띠자나, 근데 어렸을 때는 무슨 띠였어?”

“@.@ 똑같지, 어렸을 때도 용띠야”

“(의심의 눈초리로 아빠를 쳐다보며)에이, 지금은 아빠가 커서 용이지만 어렸을 때는 작았는데 어떻게 용이야?”

“@.@ 수민이 생각에는 아빠가 뭐였을거 같은데?”

“음... ㅡㅡa 뱀이였지?”

ㅡㅡ;

April 24, 2003

워낙 물이 좋다 보니

요즘 극비 프로젝트 때문에 본사출근은 못하고 남들이 흔히들 말하는 “물 좋은 동네”에 임시 사무실 하나 얻어 출퇴근하고 있습니다.
물이 좋은 동네라 점심 저녁때 구경하기 바쁩니다. ㅡㅡ;

어제는 부하 직원중에 모과장이 점심을 먹고 나오다가 야시시한 여자 하나를 보고서 “음 B급 정도 되겠다” 라고 말하자 뒤따르던 사원하나가 슬쩍 보더니만

“헉! 과장님 엄정화예요” 하더군요.

물이 워낙 좋다 보니.... ㅡㅡ;

April 25, 2003

Please

작년 영어교육 기간중에 강사가 이런 얘기를 한 기억이 난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가르쳐 준 것 중에 잊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있는데... 매직 워드(magic word)라는 것이었단다.

살아 가면서 절대 잊어서는 안될 단어이며, 어떤 어려운 상황이라도 해결해 줄 수 있는 그런 마법의 단어인데, 그것은.... "please" 라고 했다.

문득 이생각이 나서 검색을 해 보니 "thank you", "I am sorry" 라는 매직 워드가 나온다.

매직워드... 누가 붙인 말인지모르겠지만 정말 공감이 가는 표현이다.

April 26, 2003

간만에...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집안 청소후 2차로
호프집에서 즐거운 밤을 보냈습니다.

소소는 마른 오징어가 먹고 싶었는데 형준이가 부득부득 번데기를 원해 시켰지만 징그럽다고 아무도 안먹었습니다. ㅠㅠ

안주가 아까워서 목안에서 넘어가지도 않는 번데기 안주를 소소가 깨끗이 비웠습니다. (소소는 소주에 번데기를 좋아하지 맥주에는 별로 입니다) 번데기는 소소 어렸을때 맛있게 먹던 간식이었는데... 음식은 안변해도 세월은 흐르고 사람이 변하고 입맛이 변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자연의 힘과 같습니다.

입맛이 변하듯이 생각도 변할테인데... 소소의 잣대로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친다는 것이 항상 올바를 수 없다는 것... 그것을 깨우치지 못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배워야 한다고... 변해야 한다고... 늘 생각하지만 정작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 가장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