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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장면

양코쟁이놈이 어떻게 이런 장면을 영화에 넣었을까?

눈이 내리는 밤...
일본의 어느집 뒷뜰...
두 여무사를 뒤에 놓고...
오른쪽 전면에는 물레방아 비스무리한 것(물이 똑똑 떨어지다가 어느 정도 차면 올라가면서 물을 쏟아낸다)...
'똑똑똑' 물이 떨어지는 음향만 들리는... 이 한장면

너무나도 동양적인 운치를 느끼게 하는 이 컷이 'KillBill'에 나온다.
스프래터와 슬래셔 무비를 뒤섞은 듯한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재미있게 보았다.

주의) 영화가 온통 빨간색이고 팔, 다리, 머리등이 신체 분리되는 장면이 많다.

진정 잔인한 건 장면이 아니다 낄낄대고 볼 수 밖에 없다는 점이지

어쩌면 이건 취향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미라맥스 영화사 로고가 끝나자마자 느닷없이 등장한 저 황금물결 치는 60년대 홍콩 무협영화의 명가 쇼 브러더스 영화사 타이틀을 보면서 이미 내 심금은 울고 있었다. 6년 만에 돌아온 쿠엔틴 타란티노의 네 번째 영화 〈킬 빌 vol 1〉은 거의 나를 위한 영화(처럼 보일 지경)이다. 정말 이 영화는 난데없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영화가 있다. 하나는 대중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만드는 아첨꾼의 영화이고, 다른 하나는 아무도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를 보여주지 않아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만드는 자기 자신만을 위한 나르시시즘의 영화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세 번째 영화이다. 타란티노는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의 장면들을 자랑하고 싶어서 참지 못하고 명장면 컴필레이션을 만드는 수다쟁이 복화술사이다. 그게 지나쳐서 영화는 거의 횡설수설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게다가 종잡을 수 없는 사운드 트랙은 기괴하기 짝이 없다.

원작은 아마도 윌리엄 아이리시의 소설을 영화화한 프랑수아 트뤼포의 〈신부는 검은 옷을 입었다〉일 것이다. (그런데 타란티노는 후카사쿠 긴지의 〈배틀 로얄〉이라고 주장한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텍사스에서 결혼식을 하던 ‘검은 코브라’ 더 브라이드(우마 서먼)가 임신한 채로 ‘데들리 바이퍼’ 조직의 옛 동료들의 습격을 받고 죽음 직전까지 간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더 브라이드는 복수를 결심하고 4년 6개월 만에 돌아온다. 복수는 이부작으로 나뉘었고, 전편에서는 다섯 개의 ‘챕터’로 나누어(시간을 뒤죽박죽으로 만들면서) ‘살모사’ 버니타 그린과, ‘독사’ 오렌 이시와 진검승부를 벌인다. 남은 세 명 ‘캘리포니아산 뱀’ 엘 드라이버와 ‘방울뱀’ 버드, 그리고 두목 빌은 후편으로 복수가 넘겨진다(내년 2월 셋째 주 미국 개봉). 이런 이야기는 사실 뻔한 줄거리이다. 복수는 성공할 것이고, 해피엔딩은 예정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란티노는 그걸 넋을 잃고 정신없이 보게 만든다.

명백히 세르지오 레오네의 마카로니 웨스턴과 장철의 쇼 브러더스 무협활극과 후카사쿠 긴지의 사무라이 ‘짠바라’를 원본으로 하였으며, 마지막 도쿄 한복판 디스코 요정 청엽정에서의 ‘죽음의 88인회’와의 대결은 장철의 (〈외팔이〉와 )〈복수〉와 스즈키 세이준의 〈문신 일생〉에 오마주를 바친 장면들임에 틀림없다. 어디 그 뿐이랴! 더 브라이드는 이소룡의 그 유명한 노란색 츄리닝을 입고(〈사망유희〉) 청엽정에 쳐들어가서 88명의 잘린 팔과 다리에서 솟구치는 피로 샤워를 한다. 나는 이 목록만을 가지고 오늘 신문 전체를 채울 자신이 있다. 그러나 (정말 아쉽지만) 참자! 하지만 이건 말해야겠다. 맹세코 이야기하건대 아무리 당신이 단단히 마음을 먹어도 청엽정의 사지절단 액션과 눈 내리는 정원에서의 진검승부는 오줌을 쌀 지경으로 몰고 갈 것이며, 이시이 오렌을 소개하는 재패니메이션은 그냥 한마디로 황홀하다.

차마 목불인견이라고 천만의 말씀. 이 영화가 무시무시한 것은 그 장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시종일관 낄낄대고 웃으면서 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진정 잔인한 영화다. 여기에는 스타일의 역사가 지닌 필연성에 대한 무효화와 의미에 대한 무관심이 있다. 혹은 장르의 영토에 대한 황폐화가 있다. 할리우드 영화 사상 스튜디오 안에서 가장 많은 ‘핏빛’ 페인트를 쏟아부은 타란티노의 야심은 그 허기진 탐식증에 있다. 그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할리우드에 아무런 미학적 전통도 빚지지 않은 대신 전지구적 B급 영화의 목록을 들고 나타나서 으스댄다. 그러나 돌이켜 보라! 그 목록은 (정말 예외 없이) 1970년대 베트남전 시대의 미국 바깥의 대중영화들의 신음 소리다. 이것은 죄의식 없이 역사를 외면하고 강탈과 도적질로 넘쳐나는 장르영화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보는) 즐거움은 넘쳐나지만 (미학적 성찰의)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장면의 기쁨은 황홀하지만 (역사적 무관심의) 잔인함은 일말의 동정도 없다. 여기에는 역사에 대한 낭비와 스펙터클에 대한 무한정한 유혹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나는 타란티노와의 진검승부 끝에 피 흘리며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 칼,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것이 맞구나!(속편 계속)

추신: 역사는 기록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은 (이 영화를 14초 잘라 내야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영화등급분류 위원님들의 명단이다. 정홍택(위원장), 백정숙, 손기상, 이세기, 조문진, 조희문, 옥선희, 이종님, 권은선. 당신들은 당신들의 혀끝으로 다시는 ‘표현의 자유’라는 말을 하면 안 된다. 사람은 한 입으로 두 말을 하면 안 된다.

정성일/ 영화평론가

출처 : 시네21

Comments (3)

봐야될 영화들 중에 하나....
언제보지?..-.-a

반지의 제왕 먼저 보고 짬 날 때...

ㅋㅋㅋ 전 벌써~ 히히
등 근육을 잔뜩 긴장하며 보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