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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퇴장

그가 복직을 하고 서양문화사를 강의하였을 때 수백명의 학생들이 강의실을 메웠다.
군사 정권하에서 온갖 고초를 겪은 그를 민족/시대의 양심으로 받들만한 가치가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었다. 그런 그가 왜 혼탁한 정치판에 뛰어 들어 추한 괴물로 변했을까? 추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생생히 지켜본 나는 한때 그와 같은 캠퍼스에 있었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었다.

어제 우연히 그의 홈페이지를 보게 되었다. 유신체제에서부터 정주영씨를 만나 정치에 입문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그의 생각들이 적혀 있다. 70년대 쓴 주옥 같은 글에서부터 극우로 분류되는 월간조선에 연재하는 글까지 그의 변천을 볼 수가 있었다. ‘교수가 무슨 정치냐?’ 라는 글에서

나는 한국 정치가 얼마나 썩었으며 이것을 바로잡는 일이 말이나 글만 가지고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책이나 읽고 원고나 쓰고 강연이나 하고 여행이나 즐기면서 여유있게 노년을 보내기에는 우리의 정치적 현실이 너무나 절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말이다. 나는 ‘낭만적’인 노력을 포기하고 전투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믿고 정치판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말이나 글로가 아니라 행동으로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확신에 도달한 것이다.
라며 그는 60이 넘은 나이에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정치에 뛰어들게 된 것에 대한 변을 한다. 나이 60은 이순(耳順)이다. 뜨거운 가슴으로 행동하기에는 늦은 나이였다.

정치판에서 물러난 후 지금은 강연 및 글을 통해 일반인과 만나고 있다. 아직도 왕성한 필력을 과시하고 있다. 최근의 그의 글을 읽어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군사독재시절의 후광으로 빌붙어 먹고 지내는 자들이 판치는 세상인데, 아직도 민주/반민주의 구도로 이상하게 흘러가는 나라인데, 그들을 향한 독설을 퍼붓는 지성인으로 남지 않고 적화통일을 우려하고 자유를 수호해야 한다는 반공의 대변자로 남은 인생을 채우는지... 그도 반공논리가 이 나라를 지배하던 그시절의 희생자였거늘... '

한때 존경하던 분이었는데... 마지막 길을 쓸쓸히 가는 그를 보니 안타깝기만 하다.

Comments (1)

아직 계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