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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승효상

파주 Bookcity에 갔을 때 녹슨 철판에 마감하지 않은 시멘트 벽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건물을 인상깊게 본 적이 있었다.

오늘 우연히 '빈자(貧者)의 미학 설파하는 건축가 승효상'이라는 글을 읽다 이런 건축물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 옮겨 놓는다.

그의 방엔 시멘트 벽돌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천장도 시멘트 마감 그대로다. 이른바 내장이라는 것을 전혀 하지 않은 방이다. 문외한이 전문가로부터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그저 종횡무진, 좌충우돌 질문을 던지는 수밖에는 없다는 것이 내 경험이다.

"저런 마감은 너무 거친 게 아닌가요?"

"처음 보면 거칠기도 할 겁니다. 그러나 거칠다고 '뷰티풀'하지 않은 건 아니지요. 시멘트는 '스위트' 하지는 않아도 '뷰티풀'한 재료입니다. 스위트한 건 금방 싫증나도 뷰티풀한 건 오래가거든요."

(중략)

"녹슨 철판을 선호하는 이유는 뭡니까."

"저건 원래 건축 재료가 아니었어요. 토목용이지요. 강이나 바다에 교량을 설치하면 페인트를 칠할 수 없으니까 남아있는 철을 영구보존하기 위해 특수 합금한 내후성 강판입니다. 시간이 가면서 산화하다 몇 년 지나면 암적색이 그대로 유지되어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울려들어요. 쇠는 기본적으로 땅의 산물이고 산소와 결합해 자연스러운 색이 형성되거든요. 번쩍거리는 것을 싫어하는 내 구미에 맞고 금방 지어도 새 건물처럼 보이지 않는 이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값도 싸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요즈음은 하도 많이 써서 값이 잔뜩 올랐어요. 재료마다 물성이 다 다릅니다. 그 성질을 파악해 정직하게 드러내는 일이 흥미진진합니다. 요즘은 다시 돌의 물성을 들여다보는 중입니다."

건축사무소 이로재 대표인 승효상씨와 관련된 글을 찾아 보니 김수근씨 문하생이였으며 이채롭게도 국립현대미술관 선정 2002년 올해의 작가상을 받았다. Bookcity 건설에 코디네이터로 직접 참여하였으며 그의 철학이 담긴 헤이리 마을과 출판단지 건축 계획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파주의 헤이리 예술마을과 북시티는 엄청나게 중요한 문화사적 의미가 있다. 특히 북시티는 '사유와 묵상의 도시'로 개발됐다. 과거의 도시개발은 어디부터 채울 것인가라는 차원에서 시작됐는데, 북시티는 어디부터 비울 것인가가 중심이었다. 북시티에 가 보면 수없이 많은 비워진 공간들이 있다. 공간을 보면 사람들이 상상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같은 건물 내에서도 이동할 때 밖으로 트인 공간을 지나도록 설계된 건물이 많다. 이동하기 위해 어차피 바깥 공기를 쐬며 걸어야 하고, 한강도 한번 바라볼 수밖에 없다. 또 대개의 건물이 간판을 비롯한 상징물들을 갖고 있는데, 북시티의 건물들은 상징이 없이 중성적으로 설계돼있다. 이 때문에 건물의 정면이 어디인지 분간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상징은 사람들의 상상에 제한을 가한다. 커피잔처럼 생긴 건물을 보면 사람들은 커피 생각밖에 못하지만, 그런 상징이 없다면 마음대로 상상하고 사유할 수 있다.
그는 건축을 삶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 즉 사는 방법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건축의 외형이란 그 속에 삶의 시스템이 포장된 상태다. 따라서 외관이나 모양은 그 시스템을 정직하게 나타내는 것이 가장 좋다. 입면을 건축의 목적으로 잘못 판단해 건축을 시각적 상징과 기호로 취급하는 예가 숱하다. 더 가관인 것은 건축을 일종의 조형예술로 착각하는 일이다.
우연히 알게 된 한 건축가를 통해 좋은 가르침을 받았다.

Comments (4)

요새 파주 출판단지에 영화보러 종종가곤 하는데..
좋더군요..^^

쇼핑몰에 있는 영화관만 다니다니...

영화보러 가면서 둘러보긴 하죠...
설마 단지 영화만 보러 거기까지 가겠어요..--;

영화보러 가면서 둘러보긴 하죠...
설마 단지 영화만 보러 거기까지 가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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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 하긴...
두어번 가고 나니까..
영화보러 바로 가게 되긴 하더만요..--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