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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청계천 넷가가 어디죠?"

퇴근길 미대사관 앞에서 나와 연배가 비슷한 부인이 묻는다.

"예? 청계천 넷가요?"

짧은 순간에 ‘4가 - 사가 - 넷가’라는 숫자 ‘4’와 관련된 생각들이 지나간다.

"예, 청계천 넷가를 갈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돼죠?"

이쪽 저쪽 방향을 가르키는 그녀의 손짓을 보고서야 이 부인이 가고자 하는 곳이 ‘청계천 냇가’, 즉 ‘청계천’임을 알 수 있었다.

"아~ 밑으로 곧장 두 블록 내려 가시면 됩니다." 라고 길을 일러준 후 돌아서며 혼자 짧은 웃음을 짓고 말았다.

'청계천 냇가라고?'

나에게 ‘내, 냇가’라는 이미지는 우리의 어머님들이 빨래를 하고 아이들이 꼬추를 내놓고 멱을 감는 그런 장면이 연상되는 고향의 작은 하천이다. 그 옛날 청계냇가도 같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테지만 지금의 청계천을 청계냇가로 호칭하는 아주머니의 어딘지 모를 순수함이 나를 미소짓게 했다.

청계천이 하천 고유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공으로 조성해 놓은 그 어떤 자연물에 정감을 느끼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인공 폭포가 그러하듯이 지금의 청계천은 단지 인공 수로일 뿐이다. ‘내’도 아니요 ‘천’도 아니다. ‘청계 수로’라 함이 맞다.

Comments (3)

ㅋㅋㅋㅋ
한류우드에 이어 또 아이러니컬 한 일이지만~ (오늘 참 우연히 들어왔다 우연이 자주 겹치는군요 ㅋㅋㅋ)

홍콩,동경,북경,인천의 국제공항에 청계천을 홍보하는 와이드광고가 생겼는데 그 카피를 제가 썼습니다.^^;
(사실 제가 쓴 카피는 그게 아니었는데 일부 똑똑한 공무원 나리님들이 지들 맘대로 오려붙이고 짜깁기 해놨더군요)

청계천 오픈하기도 전에 쓴 카피라, 자료만 보고 정말 생태적 공원이려니 하는 생각에 개인적인 기대감도 곁들여 처음에는 '자동차가 다니던 길을 물고기가 다니는 길로 만들었습니다' 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청계천 오픈한지 며칠 뒤 밤에 몰래(?) 찾아가 봤더니 순수한 자연의 섭리로 생겨난 물고기나 풀과 벌레는 볼 수 없을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고기가 다니는 길은 무슨...'
물길 구간마다 설치된 인공조명에~ 승질 급한 유속에~ 물고기는 커녕 어린 미생물이라도 어떻게 태어나겠나...하는 씁쓸함이 들더군요.
그래서 이번 카피에 대한 애정을 거두고, 부담없이 마음대로 손들 보시라고 시청 관계자 여러분께 맡겨뒀습니다.

새로 열린 청계천이 좋다고 생각한 분들한테는 기분 잡치는 얘기겠지만, 사실 생태공원이라는 단어는 적합하지 않은 곳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청계천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다.
막무가내식 관료주의와 그 관료주의가 만들어낸 관념적 허상이 죄일 따름이죠.

그래서 요즘 제가 하는 일은 카피를 쓰거나 기획을 한다기 보다는 이 부끄러움 모르는 관료주의와 대립해서 싸대기 주고받는 일이 거의 90% 이상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소소님의 글이 제 마음과 너무 닮아 오랜만에 긴 글을 남겼습니다.
요즘 제 홈에는 답글도 안 다는데...ㅋㅋㅋ

이런... ㅡ.,ㅡ;
꺽쇠를 쓰는 바람에 글이 잘려서 할 수 없이 다시 올렸습니다.
먼저 쓴 위에 글을 지워주십시오~ ^^;

지워드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