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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신두

2001년 9월 28일 LG배 결승 2국. 이창호는 최명훈과의 대국에서 71수에 '진신두'를 두었다.

두어 달 전, 바둑TV에서 이 대국을 다시 소개하면서 '진신두를 언제쯤 수읽기를 했느냐?'는 질문에 이창호는 '47수'를 두면서 보았다고 했다.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다는 묘수, 그리고 그가 바로 이창호라는 것의 절묘한 타이밍으로 당시 언론에서는 이사실을 크게 다루었는데, 그 뒤에서 피눈물을 삼킨 패자 최명훈을 조명한 곳은 거의 없었다. 이 글을 쓰면서 진신두와 관련된 기사를 찾던 중 당시 최명훈 8단의 심정을 실은 기사 하나를 우연찮게 찾을 수 있었다. 최명훈은 당시 대국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생각할수록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천년만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다는 ‘진신두의 묘수’에 내가 직접 당하다니... 외길 수순인데도 한동안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이 판은 내가 이겼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다. 아마 똑같은 상황을 묘수풀이 문제로 냈다면 순식간에 정답을 찾아냈을 것이다.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처절함이 느껴지며 바둑 애호가로서 가슴이 아프다. 바둑에 진 것보다 그런 묘수에 희생양이 되었다는 것이 어찌보면 더욱 더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으리라. 이 이후로 국내외 도전기에서 최명훈의 이름을 찾아 보기가 힘들다. 끝없는 부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의 마지막 말이 헛되지 않게 다시 옛기량을 찾아 반상으로 돌아와 나이 쉰넷이지만 아직도 멋진 기사로 활동하고 있는 서명인처럼 되길 바란다.

밟아도 밟아도 살아나는 잡초처럼.